연봉 18억, CEO 없는 회사… 제인스트리트의 정체
최근 국내에서도 '퀀트 펀드(Quant Fund)'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히 딥시크(DeepSeek)를 운영하는 환팡 퀀트(Huanfang Quant)의 성공 스토리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죠. 하지만 월스트리트에는 이보다 더 강력하고도 은밀한 플레이어가 존재합니다. 바로 제인스트리트(Jane Street) 입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제인스트리트는 지난 한 해 동안 약 3960억 달러(약 270조 원)의 거래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는 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 같은 전통 금융 대기업을 넘어서는 수치로, 월스트리트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성과입니다. 직원 수는 약 3500명에 불과한데, 6570%의 마진율을 가정하면 **1인당 연간 이익이 800만900만 달러(약 109억~122억 원)** 에 달합니다. 1000명 이상 직원을 둔 기업 중에서는 사실상 독보적인 수준입니다.
비교하자면, 세계 최대의 시장 조성자(Market Maker)인 시타델 시큐리티즈(Citadel Securities)의 1인당 이익은 약 360만 달러, 또 다른 퀀트 트레이딩 업체인 허드슨 리버 트레이딩(Hudson River Trading)은 약 660만 달러입니다. 심지어 AI 열풍의 최대 수혜자 엔비디아(NVIDIA)조차 1인당 이익이 약 290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막대한 수익성은 직원 보상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지난해 제인스트리트는 총 93억 8000만 달러(약 12조 8000억 원)의 보상을 지급했는데, 1인당 평균 약 268만 달러(약 36억 원)에 해당합니다.
신입도 연봉 10억… '날것 그대로의 재능'을 원한다
물론 평균값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제인스트리트의 공식 채용 공고를 보면, 퀀트 트레이더(Quantitative Trader)와 리서처(Researcher)의 기본 연봉이 30만 달러(약 4억 원) 로 책정되어 있으며, 여기에 연간 보너스가 추가됩니다.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높은 보상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인스트리트의 전직 트레이더는 인터뷰에서 이들이 원하는 것은 '날것 그대로의 재능(raw talent)'이지, '기성 지식(knowledge)'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불확실성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진 경험'이 있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아무리 수학을 잘하고 문제 해결에 능통해도, 트레이딩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면 곧바로 도태된다고 합니다. "트레이딩에서는 결국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면접 과정도 독특합니다. 1차 전화 면접에 이어 2차 현장 면접으로 진행되며, 문제 해결, 확률 통계, 프로그래밍, 데이터 분석, 개인 관심사 등 다양한 영역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면접은 모두 현직 퀀트 트레이더가 진행합니다.
탈락 사례로는 '과도한 자신감' 과 '침묵 속 사고' 가 꼽힙니다. 제인스트리트는 'think out loud(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기)' 를 극도로 강조하여, 조용히 생각하는 것은 금기시됩니다. 또 다른 탈락 요인은 '베팅 거부' 입니다. 시장 조성 기회를 주었는데 거절하면, 이는 '위험 감수 의지 부족'으로 간주됩니다. 또한, 의도적으로 불리한 호가를 제시했을 때 당황하여 수락한다면, 그 또한 부적격 판정을 받습니다.
한 지원자는 제인스트리트 면접 경험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면접관과 뉴욕 금융가 풀턴 스트리트(Fulton Street) 역에서 만나, A선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 파크 방면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체스판 없이 구두로만 체스를 두는 것이 면접이었습니다. 동전 던지기로 초반 수를 결정하고, 59번가 콜럼버스 서클 역에 도착할 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속도전에 돌입해 센트럴 파크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지원자는 타임스퀘어 역에서 패배했습니다. 전체 이동 시간이 약 20~30분인 점을 감안하면, 게임 시작 10분 만에 진 셈입니다.
이처럼 시끄럽고 제한된 환경에서 고강도의 기억력, 계산력, 의사 결정력을 유지하는 능력이 바로 퀀트 트레이딩의 핵심 역량입니다.
CEO 없는 회사, '수익성 높은 아나키스트 코뮌'
고액 연봉 외에도 제인스트리트의 기업 문화는 직장인들의 선망을 받습니다. 정규직 직원은 해고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금융권에서도 독보적인 안정성을 자랑합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 회사를 '극도로 수익성 높은 아나키스트 코뮌'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전통적인 월스트리트의 위계적 구조와 달리, 제인스트리트는 파트너십(Partnership) 체제로 운영되며 전형적인 피라미드식 관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약 30~40명의 고위 멤버로 구성된 운영 위원회와 리스크 위원회가 핵심 의사 결정을 내립니다. 이들은 회사 지분 약 24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자 다른 트레이딩 데스크와 사업 라인을 책임지지만 '사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엄밀한 의미의 CEO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헤지펀드 퀀트 분석가는 "제인스트리트는 트레이더의 천국"이라고 평가하며, 시타델 시큐리티즈가 퀀트 분석가와 개발자에게 더 적합하다고 설명합니다. "제인스트리트는 트레이더 중심이고, 시타델은 더 체계적입니다. 트레이더는 사교적인 경향이 있어, 제인스트리트의 편안한 분위기와 포커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이유"라고 덧붙였습니다.
인센티브 구조도 파격적입니다. 일부 직원은 회사 자체 펀드에 투자할 수 있으며, 퇴사 후 경쟁사에 합류하지 않으면 이 투자 지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장기적 결속력을 강화하고 단기 이직 유인을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회사가 경업 금지 계약(Non-compete)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거의 '반(反)상식'에 가까운 선택입니다.
현재 제인스트리트는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런던 사무소 규모를 두 배로 늘릴 계획이며, 뉴욕, 홍콩 등 핵심 시장에서도 투자를 확대 중입니다. 홍콩 중환 지역의 신규 임대 계약은 최근 몇 년간 해당 지역 최대 규모의 오피스 거래 중 하나로 꼽힙니다.
AI 투자로 진화하는 '컴퓨팅 집약적 금융 플랫폼'
제인스트리트의 자본 규모는 2016년 이후 약 2000% 증가하여 450억 달러에 달합니다. 전통 시장뿐만 아니라 AI 분야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AI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의 주요 투자자로서 여러 차례 자금 조달에 참여했으며, 앤트로픽의 가치가 계속 상승하면서 상당한 평가 차익을 얻고 있습니다. 또한,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 코어웨이브(CoreWeave)에 약 1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고, 총 60억 달러 규모의 컴퓨팅 파워 협력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계약을 통해 엔비디아의 차세대 아키텍처 기반 컴퓨팅 자원을 포함한 데이터센터 자원을 제공받아 AI 모델 훈련과 확장에 활용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제인스트리트가 단순한 '퀀트 트레이딩 회사'에서 '컴퓨팅 집약적 금융 테크 플랫폼' 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논란 속에서도 성장하는 '월스트리트의 숨은 거인'
막대한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제인스트리트는 창립 초기부터 논란에 휩싸여 왔습니다. 1999년, 서스퀘하나 인터내셔널 그룹(SIG) 출신의 트레이더 3명과 IBM 출신의 프로그래머가 공동 창업했습니다. 핵심 인력이 대거 이직하자 SIG는 '독점 정보 유출 및 핵심 인력 스카우트'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실질적인 판결 없이 종결되었습니다.
회사는 처음에 '헨리 캐피털(Henry Capital)'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ADR(미국 예탁 증서) 사업으로 시작했습니다. ADR은 이론상 원주와 가격이 일치해야 하지만, 시차, 환율 변동, 정보 전달 지연 등으로 인해 미세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창업자들은 이 '틈새'를 알고리즘과 속도로 공략하여 확정적인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2000년 8월, 헨리 캐피털은 제인스트리트로 사명을 변경하고, 당시에는 변방 상품이었던 ETF(상장지수펀드) 에 집중하기로 결정합니다. ETF 시장은 유동성이 낮고 참여자가 적어 대형 기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인 차익 거래의 장이었습니다.
시장 조성(Market Making) 은 이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시장 조성자는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를 동시에 제시하고, 언제든지 거래를 체결할 준비를 하며 미세한 가격 차이에서 수익을 축적합니다. 이는 밀리초 단위의 가격 결정, 방대한 재고 리스크 관리, 글로벌 시장 간의 연속적인 운영을 요구합니다. 속도와 정확성은 제인스트리트의 강점입니다.
지난 20년간 ETF 시장은 수천억 달러에서 수십조 달러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기관, 개인, 연기금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제인스트리트 외에도 시타델 시큐리티즈, 서스퀘하나 인터내셔널 그룹 등 전자 시장 조성과 퀀트 트레이딩에 특화된 기관들이 ETF 확장 주기에서 함께 급성장했습니다. 동시에 복잡한 금융 구조를 이해하면서도 기술 기반 역량을 갖춘 글로벌 엘리트들이 등장하여, 전통적인 월스트리트 트레이더들을 점차 대체해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제인스트리트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암호화폐 진출이 있습니다. 2024년 2월,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 랩스(Terraform Labs) 청산 관련 소송에서 제인스트리트가 내부 정보를 이용한 거래로 이익을 취해 테라폼 창업자 권도형(Do Kwon)의 암호화폐 체계 붕괴를 가속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관련 혐의는 여전히 논란 중이며 확정된 바는 없습니다.
2025년 7월에는 인도 증권 규제 기관이 제인스트리트의 거래 전략이 시장 조작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사는 이를 부인했지만, 약 5억 6400만 달러의 관련 자금을 에스크로 계좌에 예치한 후 인도 시장에서 거래를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인스트리트의 암호화폐 시장 진출이 이미 불가피한 흐름이며, 이는 이 회사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많은 퀀트 기관들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포지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거래소 간 가격 차이와 유동성 분산으로 인해 차익 공간이 전통 금융 시장보다 훨씬 큰 10%에 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인스트리트는 이에 대해 "우리는 항상 신중하게 거래에 참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더 많은 암호화폐 상품이 등장함에 따라 우리도 참여할 것을 기대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투자자들에게 제인스트리트의 사례는 단순히 '대단한 회사'를 넘어, 금융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고부가가치 인재의 기준을 재정의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전통적인 금융 지식보다는 데이터 기반의 의사 결정 능력과 위험 감수 의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의 금융 교육과 커리어 전략도 이에 맞춰 진화해야 할 것입니다.